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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말씀묵상 욥기 11장
 안경찬  | 2012·02·13 00:52 | HIT : 2,564 | VOTE : 455 |

오늘 본문은 욥이 하나님께 왜 자신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지에 대하여 묻는 말에 대하여 소발이 변론한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소발의 변론또한 2분법 적이며 감정적이기까지 합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보다 더 뛰어나신 지혜를 가진 하나님께서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며 욥을 비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소발의 변론에서 소발이 말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나,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의 중심으로 삼았을 때의 하나님께서 배풀어 주실 은혜또한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발 또한 범한 이분법적인 논리의 오류가 있다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소발은 욥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졌고, 그가 다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사실 욥기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이시대에 사람들이 전하는 말씀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점점 세속화 되어감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외형적인 성장이 크면 마치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의롭다하여 복을 주신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곳에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큰, 성장이 많은 교회로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아니 몇몇 교회가 이러한 외적 성장을 하나님의 은혜와 결부시켜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곤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둔다고 말하면서 기복주의적 신앙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소발의 변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분법적 사고의 틀안에 규정시켜버리는, 그 크신 지혜를 생각치 못하고 그 지혜를 우리마음대로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믿지 않고 자신들의 성공만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 처럼 생각하여 교회의 외적 모습만을 늘려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발이 생각하는 감정적이고 1차원적인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가 불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또한 그 교회의 외적인 성장이나 규모가 그 교회를 규정짓는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적은 무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 눅 12:32)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원하시고, 그것을 통해 그에게 내려주시는 축복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며, 영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들이, 아니 우리들 모두가, 소발의 이분법적 논리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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