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사회선교를 위한 새벽이슬
 



‎2월 20일 말씀묵상 욥기 20장
 안경찬  | 2012·02·21 01:16 | HIT : 2,429 | VOTE : 447 |

오늘 본문에서는 욥의 말에 대한 소발의 대답이 나옵니다. 그는 욥의 고통을 악한 행위로 부터 기인된 것이라며 감정적이고 강도 높은 말투로 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고 하는 과정에 있어서 지름길을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사고의 과정이 줄어들면 그 만큼 사고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시간 또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고정관념 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지름 길은 흑백 논리 입니다. 한가지 기준에 맞추어, 분명하게 나눠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의 지름 길은 쉽게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반면 오류를 범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에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소발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일이 되버린 것 같습니다. 값싼 복음이 전파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이 줄어 드는 것 같습니다.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했던 교회는 '우리 교회가 아니면 않된다' '믿는 사람의 일이 아니면 않되' 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모든 것을 규정지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 이 분법적인 사고의 기준 또한 진정한 믿음이 아닌 그저 교회를 다니는가 아닌 가로만 규정 지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세상적인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뜻은 1차원적이고 이분법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욥의 고난이 그러하고 요셉의 고난이 그러하였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모든 일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일이 선과 악의 기준에서 분명하게 결정지어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볼때, 오늘 본문의 소발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마치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말하는 오류를 범할 때 그것이야말로 교만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그것을 받아드리는 것 같습니다. 고정관념으로 우리의 생각의 속도를 높여봐도 하나님의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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