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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말씀묵상 욥기 33장
 안경찬  | 2012·03·05 00:00 | HIT : 2,460 | VOTE : 404 |
오늘 본문은 엘리후가 본격적으로 욥에대하여 지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욥은 앞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통을 왜 주셨는지 아무런 말도 해주시지 않고 잠잠하다고 불평을 하였고, 이러한 부분에 욥은 반론을 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갈때 많은 어려움과 고난에 부딪히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처음 드리게 되는 기도가 '하나님 왜 이런 고난을 저에게 주셨습니까?'하는 기도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매번 '왜'라는 질문만 수도 없이 되뇌였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답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침묵 가운데 저의 기도소리만 울릴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저에게 어리석다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러한 고난이 지나고 나서 먼 발치에서나마 그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또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들었지만, 그것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기도가운데, 혹은 삶속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 '왜'를 외치기 보다는 좀더 세밀하게 그 분의 뜻을 살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난은 그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연단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엘리후가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자를 의롭게 회복시켜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난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쉽게 와 닫지 않는 말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이것이, 연단의 과정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일이기 만을 기도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뛰어나시고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를 알기 전인태초부터 우리를 알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잠잠히 그 분만을 의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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